「‘영감이 깃든 한 자락의 기도를 소망하며’」
1989년 11월 9일 저녁 동독 기자회견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동독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Schabowski)는 동독인들의 해외여행 절차를 간소화하는 행정 조치를 발표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샤보브스키가 이 내용을 잘 숙지하지 못하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사적인 해외여행은 어떤 조건이나 이유 없이 곧 허가될 것입니다.” 한 기자가 언제부터 효력이 발생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규정을 무시한 채 “당장 지금부터”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는 실언이었습니다. 그러자 동독주민 3만 명이 그날 밤 서베를린으로 가려고 몰려들었고 동독군인들은 여행 자유화가 실시된 줄로 알고 국경을 열었습니다. 한 사람의 실수 때문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셈입니다. 지도자일수록 말의 영향력이 커지고, 말에 대한 책임이 무거워집니다. 평소에는 헌법재판소가 어떤 기관인지도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 헌재의 판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결과가 온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무거운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기회와 시위를 떠난 화살과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이 말입니다. 격려와 기쁨의 말은 사람에게 용기와 행복을 주지만, 저주와 비난의 말은 한 사람의 신용과 명예를 일시에 무너뜨립니다. 나의 인격을 돋보이게 하고, 품위를 드러내는 것은 결국은 말입니다. 또한 저열한 인격을 드러내는 것도 역시 나의 말입니다. 게다가 야고보 감독은 말은 불이라고 하셨습니다(약 3:6). 한마디 말이 우리 인격 전부를 사를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의 말은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요? 이런 무게를 잊고 말을 하며 살아온 것이 새삼 두렵게 느껴집니다. 대심방을 진행하면서 심방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기도입니다. 심방설교는 은혜롭게 선포하면 됩니다. 그러나 기도는 다릅니다. 물론 일반적인 축복의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정을 담은 한 자락의 기도는 그 자체가 곧 하나님 뜻의 선포입니다. 예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영감을 담은 기도가 열매 맺는 것을 보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영감을 담은 사랑의 기도를 주님께 올리고 싶습니다. 대심방을 진행하며 뿌려놓은 기도와 축복의 선포가 성도들에게 아름답게 열매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을 위한 영감이 담긴 축복의 기도를 드리며 목회하고 싶습니다. ‘성도 한 사람을 위한 영감이 깃든 기도를 하는 중보자가 되게 하소서!’ 여러분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목사 이 동 드림 |